사회적 약자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참여 연구

2005-04-11 [제13 호]

(편집자 주) 신명호 회원은 준비모임의 간사와 사무국장을 지내면서 참터 창립의 산파 역할을 했고 현재는 참터지기와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34세의 열혈청년이 몸담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업무 차 체류 중인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글을 보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잘들 지내시죠?

참터 창립멤버인 신명호입니다. 지금 저는 멀리 모스크바에 와 있습니다. 사무국장님께서 '러시아 통신'을 보내라고 하네요. 짤막하게 모스크바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몇 자 적습니다.

 

이제 여기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갑니다. 한국은 햇볕이 따사로운 봄날일텐데

여기는 아직 영하의 날씨입니다. 그래도 이네들은 봄인가 봅니다. 한국 같으면 겨울 날씨인데 다들 산책 나와서 걸어 다니고 공원에서 뛰기도 하고 그러는 군요.

 

연구소 일 땜에 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나와 있습니다. 이쪽 협력 파트너들과 함께 할 일들이 있거든요. 5월 중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웬지 앞으로도 자주 왔다 갔다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모스크바에 처음 도착하시면 뭔가 슬프고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딴에는 '아! 혁명의 도시였던 모스크바, 위대한 이상과 꿈이 사라진 곳에 내가 도착했구나,' 이런 감상이 마음속에 와 닿아 그런 줄 알았거든요. 사실은 모스크바가 항상 저기압이랍니다. 그래서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거랍니다. 다시 한 번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유명한 원리를 아이러니칼 하게 체감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순박하고 인간적인 편입니다. 무뚝뚝하고 쉽게 친해지기 쉽지 않은 면이 있지만, 우리들하고 비슷한 점도 많은 것 같습니다. 술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구요. 장사하는 아저씨하고 낮술 겸 보드카 주고 받으면, 500루블 하는 것도 300루블에 살 수도 있어요. '모스크바는 러시아가 아니다'라는 말들이 있답니다. 러시아의 전체 부의 80%가 모스크바와 페테스부르크(옛 레닌그라드)로 집중되고 있다고 합니다. 물가는 서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구요. 저는 모스크바에 지내면서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다닐 때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물들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한국의 1980년대 중반쯤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증축하거나 새로 짓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팬트하우스들도 많이 지어지고 있구요. 원래 모스크바에서는 몇 층 이상의 건물은 짓지 못하도록 되어있는데, 지금은 그런 규제들이 임의적으로 적용되는 가 봅니다. 모스크바는 자작나무 숲이 도심 곳곳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공원도 많구요. 날씨가 따뜻해지면 산책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도시 전체가 평지인데 도시계획을 잘 해서인지 녹지가 많거든요. 늦봄 쯤 되면 산책하기 좋을 것 같은데, 그 때쯤이면 귀국이라 조금 아쉽긴 하네요.

 

여기는 주 5일 8시간 근무를 철저하게 지킵니다. 게다가 그 8시간에는 점심시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내일이 토요일이다 그러면 금요일은 2시부터 분위기가 동료들까리 이야기하고 마감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고서 4시면 퇴근합니다. 왜냐하면 내일이 휴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주말이 아니더라도 내일이 공휴일이다 그러면 역시 똑같습니다.

그러고도 우주발사체 개발하고 우주정거장 세우고 하는 것 보면 대단합니다. 푸틴이 경제를 잘 챙긴다고 했었는데 사실은 석유 값이 올라서 그렇다는 군요. 경제가 활력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서 우리로 따지면 신흥 재벌들의 직업군을 분류했는데 1위가 지하자원을 수출하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들이었습니다. 아직 경제가 균형이 잡혀 있는 게 아닌 거죠. 그리고 최근에 유코스라는 회사가 해체되었는데 러시아 최대의 석유회사 중 하나였었습니다. 푸틴의 눈 밖에 났었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러시아는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삶이 팍팍하기는 이네들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나누는 경계가 1000루블이라고들 합니다. 1000루블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쯤 되거든요. 가스, 수도, 집 이런게 기본적으로 아주 싸거나 연금처럼 국가에서 제공되니까 딱 먹고사는 수준인거죠. 모스크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수준이상이구요, 그외 대부분의 지방도시나 농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월 소득 수준이 그 정도 되는가 봅니다. 좀 지난 이야기니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요.

 

모스크바는 차분한 도시입니다. 아직도 치안이 완전하지 않아서 위험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요. 서울이나 북경, LA 같은 도시하고는 다른 정감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앞으로도 정치,사회,경제 모든 부분에서 변화할 여지가 많이 남겨져 있습니다. 지난 한 달은 일도 많고 바빠서 연구소 업무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다음 주부터는 러시아어를 공부해 볼까 합니다.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거든요. 물론 사무국장님이 주신 '숙제'도 열심히 해야겠죠. 혹시 러시아나 모스크바에 대해서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신 분은 myshin@kari.re.kr로 메일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완연한 봄날이겠군요. 좀 있으면 벚꽃 필 때도 다 되어 가나요? 러시아 사람들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활동적이고 '와그작'거리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활기차기도 하고. 이네들은 역시나 겨울 사람들인것 같아요. 우리는 봄 사람. 일본은 여름. 중국은 가을.

 

꽃이 핀 따스한 봄날에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게 그리울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여튼 한국의 봄 만끽 하시고, 환절기에 건강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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