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에 기반한 삶의 질 제고 방안>에 드러난 조황희 박사의 문제의식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한국이 경제력 규모로는 세계 11위인지 모르나 삶의 질 측면에서는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전반적인 생활만족도 면에서 한국은 1985~2000년간 세 차례의 조사에서 모두 OECD 국가 중 최하위 권에 속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구조적인 현상일 개연성이 높습니다.

이를 진단함에 있어 조황희 박사의 초점은 먼저 재해나 사고 및 범죄에 대응 할 우리 사회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노인과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복지수준이 낮다는 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컨대 2005년 조사에서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가장 어렵게 닥쳐오는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45.6%), 건강문제(27.1%) 등이고, 2000년과 2005년 사이 장애인이 체감하는 소속계층은 계속 하락했다고 합니다. 보행권에서도 역시 32%의 노인, 그리고 장애인 응답자의 54%가 보도턱과 보행장애물 등으로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과 일본 등의 사례를 보면 소득수준 2만 달러를 돌파하는 시점에서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이를 위한 제도가 집중적으로 마련되었고, 따라서 우리 생활의 필수조건인 과학기술 역시 삶의 질을 고취하는 쪽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위해 자연재해 저감기술, 식중독균 검출 기술, 재활보조기술 등에 대한 예산 증대와 종합관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 대해 정책모임 회원들은 처음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개에 있어 방재나 식품 등의 분야로 '삶의 질' 개념을 몰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려우며, 그 결과 평이한 투자확대 주장으로 귀결된다는 비판적인 견해가 많았습니다.

이상동 회원께서 이어서 발제한 ‘공익연구개발: 개념과 현황’은 위 연구에 대한 응답이기도 합니다. 즉 보행권의 예에서 보듯 위 연구가 공공시설의 개선보다는 장애인이 보조장구를 구입하게끔 하는 기술적·개인적인 대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며, 이런 해법들은 중요한 사회적 맥락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멈춘다는 비판입니다. <공익연구개발: 개념과 현황>의 연구자들이 제시한 '공익연구개발'이란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사회운동과 정치과정까지 수반함으로써 과학기술영역에서 공공성을 확대해가는 구체적인 기획을 가리키고자 도입된 개념입니다. 이는 하나의 기술을 도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에 관계된 기술공동체를 형성하여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까지 포함합니다.

연구자들은 먼저 보건, 재생에너지기술, 유기농업기술, 환경보건 모니터링 등의 분야를 공익과 연관되는 분야라고 가정했을 때 이들에 대한 투자가 여전히 주변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을 주장하고 거버넌스 면에서도 시민사회의 관심사가 반영되기 힘든 구조임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실제사례를 들어 재생에너지 대 원자력, 그리고 유기농업기술 대 생명공학기술의 경우처럼 다양한 기술공동체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투자증대만으로는 애초와 다른 결과에 이를수도 있음을 밝히고 연구와 정책결정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발제에 대해 회원들이 가장 먼저 문제 삼은 것은 '공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연구 역시 모호하고 임의적으로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일은 공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면서 믿는 법이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군수산업의 공익성'으로까지 개념이 남용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Bozeman의 연구와 전영한 교수의 연구에 대해 토론이 오고갔으나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아직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연구 방법론으로 봤을 때, 사회적 맥락을 강조할수록 애초의 투자비율 구분은 무의미해지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에 남는 것은, 과학자 스스로 연구가 초래하는 '삶의 질'을 체크하는 부분까지도 근본적으로는 peer-review의 범주에 들어오는 것이며, 따라서 공익적 연구를 위해서는 거버넌스 구조의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형식적으로는 매단계 민간위원들의 결정권이 보장받고 있다는 것, 따라서 관료 대 과학자라는 구조로는 현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며, '계층화된 과학자 사회'라는 틀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어떤 뚜렷한 결론을 내리고 모임을 마치지는 못했습니다만 공익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이며 연구개발과 접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이렇게 적으면서 돌이켜보니, 과학기술정책에서 기술을 중심에 두는 시각과 사회적 맥락을 중시하는 시각 사이의 차이는 이후 우리 정책모임에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테마인데 첫 모임부터 그러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