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
* 글을 읽으면서 나오는 음악들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영문 가사의 번역은 필자 임의로 한 것입니다(-_-)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던 느낌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십년전까지만 해도 '자살'은 '죽음'이 주는 묘한 신비감과 공포, 또 '선택'이 주는 결연함 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신비스런 단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이중적이고 묘한 느낌보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타산이 더 앞서 생각나게 되었다. 그러나 대답하기 힘든 질문 하나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까?"

최근에 미국의 SF작가인 '커트 보네거트'의 에세이집인 <나라 없는 사람>을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구절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재즈 역사가이자 훌륭한 작가이고 무엇보다 나의 절친한 친구인 앨버트 머리가 한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 노예제-결코 완전히 치유되지 못할 잔학 행위-가 번성했던 기간의 평균 자살률은 노예보다 노예 소유주 쪽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머리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노예들에겐 우울증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던 반면, 노예 소유주들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노예들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함으로써 노인자살 충동을 떨칠 수 있었다. 머리가 제시하는 또다른 이유도 나에겐 꽤 합당하게 들린다. 즉 블루스는 우울증을 집 밖으로 날려버리지는 못하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방 안 구석으로 쫓아버릴 수는 있다는 것이다.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은 재즈 때문에 우리를 사랑한다. 그들은 우리가 만인의 자유와 정의를 외친다 해서 우릴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우릴 미워하는 건 우리의 거만함 때문이다.


한국에서 왜곡되어 쓰이는 '블루스'라는 단어는 사실 미국 대중음악사의 근간을 이루는 일종의 전통음악이다. (한국에서 흔히 '블루스타임'에 나오는 음악들 중에는 실제 블루스와는 관련없는 곡들이 더 많다.) 블루스는 어떤 음악이기에 과연 우울증을 잠시나마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흔히 생각하는 느린 템포의 서정적이며 살짝 가을 낙엽을 연상시키는 음악도 블루스에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다채롭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성인 나이트에서 블루스타임에 산타나(Santana)의 <Europa>를 연주한다. 그러나 사실 europa는 블루스의 곡구조를 변형시킨 연주곡이다. 오히려 Europa와 블루스의 거리보다 척베리(Chuck berry)의 <Johnny B good>과 블루스의 거리가 훨씬 짧은 편이다.

블루스를 이루는 큰 세가지 축은 가사, 리듬, 멜로디이다. 블루스의 가사들을 한국어로 번역해보면 뜨억! 하고 소리칠만한 가사가 상당하다. 델타 블루스의 전형을 구축하였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32-20 blues>의 가사 일부를 보자.

If she gets unruly, and thinks she don't want do
Take my 32-20, and cut her half in two
만약 그녀를 휘어잡을 수 없다면, 그리고 그녀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내 32-20(총기의 종류)를 집어들고 그녀를 두동강 내줘라

이 가사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실제 블루스 가사에는 별의별 이야기가 다 등장한다. 때로는 귀여운 가사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머디워터스(Muddy waters)의 <got my mojo workin'>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가사이다.

I got my mojo working, but it just don't work on you
I want to love you so bad, 'till I just don't know what to do
내 주술이 너한테만은 안먹혀!
난 널 너무 사랑하고 싶은데, 워째야 할지 모르겠구만

이와 같은 극단적이거나 혹은 애끓는 감정을 그들은 기타 하나를 집어들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사회적 규칙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실제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이러한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통한 감정의 배출일 것이다. 다시 한번 애초의 물음을 돌이켜보자. 사람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까? 가장 쉽게 이야기하자면 한마디로 "복장 터져서" 일 것이다. "복장 터져서"라는 말은 감정의 배설과 관련있다. 맺힌 감정을 쉽게 쏟아낼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복장이 터질 것처럼 힘들 것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가진 환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배설'의 형태로 머리속에서 떨쳐내기 힘든 사람들이다. 내뱉고 잊어버리는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내일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알 수 있는 사실은 블루스의 태동 당시 흑인 농장 노동자들의 삶이다. 그들은 음악과 함께 살았다. 우리네 노동요처럼 그네들도 목화밭에서 뼈빠지게 일하면서 선창/후창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불렀다. 쉴 때는 마을에 있는 나즈막한 술집 겸 수퍼 앞에 앉아서 기타를 치며 그들을 힘들게 했던 농장주를 여성에 빗대어 노래를 불렀으며 교회에 가서는 설교와 화답마저 노래하였다. 그리고 그런 삶의 형태는 가사에 잘 녹아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서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또 목화 농장 노동과는 하등 관련없이 살았던 백인들은 왜 블루스에 집착하고 또 그것을 전세계를 지배하는 대중음악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