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

앨런 로맥스 (Alan Lomax, 1915~2002). 서양 대중음악사에서 그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미 국회 도서관의 전통음악 아카이브에서 조수로 활동하며 음악학자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나서 수집한 노래의 주인공에는 잘 알려진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시카고 블루스의 시대를 열어젖힌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같은 이들이 있었다. 그는 미국 외에도 아이티, 아일랜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서인도 등의 음악도 녹음하였다. 그는 '지역의 음악 및 문화'에 대한 옹호자였다.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언어, 그리고 그에 뿌리내린 음악의 다양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의 지칠줄 몰랐던 녹음, 즉 음악의 기록은 바로 그런 그의 생각을 현실세계에서 구현하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한국에도 그와 비견될만한 인물이 있다. 바로 MBC 최상일 PD다. 그는 십년도 넘게 민요를 수집하러 한국 땅을 이리저리 다니고 또 다녔다. 그 작업의 결과는 이제 책과 CD로도 만날 수 있지만, 아마도 라디오에서 들렸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라는 문구가 더 익숙할 것이다. 최PD는 그가 펴낸 책에서, 남한에서 건진 민요가 14,000곡 정도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 잘된 것만 골라서 CD와 해설집으로 냈는데도 그 곡수가 무려 2,250곡이라고. 그래서 10년간 하루 몇차례씩 방송하면서도 아직 방송이 되지 않은 자료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국악' 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뱉으면, 몇 가지 정형화 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다. 상모를 돌려가며 신명나게 놀이하는 농악패, 아니면 공연용으로 다듬어진 앉아서 하는 사물놀이, 또는 궁궐에서 가끔 이벤트성으로 보여주는 제례악, 영화 서편제에서 보았던 창.. 등. 그러나 이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하기는 힘들다. 이를테면,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컨트리, 블루스와 포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우리는 우리의 전통음악들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가? 우리네 음악교육을 떠올려보면 그 대답이 오히려 쉬워질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필자의 기억으로는 우리의 전통음악과 우리의 정서는 첫번째, 주입되었고(아리랑을 배우며 '한'의 정서라는 걸 처음 알았다), 두번째, 세대간 구전의 흐름이 끊겨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단절과 인위적인 단절의 복원은 너무나 서글픈 일이다. 곧 없어질 피맛골을 보며 드는 생각은 내가 잃어버릴 저 먼 기억속의 음율과도 닿아있다. 그렇다면 우리네 지역의 음율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앞에서 언급했던 단절, 그리고 그것을 곡조와 감정의 일률적인 대응을 교육하여 극복하려는 방식은 오히려 전통요를 '특수한 무언가'로 만드는 데에 일조할 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특수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우리가 만들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에 '문화'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녀시대'를 기억하는 만큼이나 '할머니의 자장가'를 기억하는 것이 편안할 필요가 있다. 진정 음악으로 대화하고 이웃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종교배'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사물놀이도, 창도, 제례악도 모두 '국악'이라는 카테고리에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국악'이라는 단어를 던져버릴 필요가 있다. 로맥스는, 민속은 지역 레벨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국가적 레벨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고립상태에서가 아니라 타 문화와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번창할 수 있다고 본다. '국악'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교류를 방해하기도 하며, 우리의 정서가 꼭 국가적으로 통일되어있다거나 국가적으로 공감 가능하다는 식의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기까지 한다. '전통가요'라는 장르명칭은 어느새 트로트가 차지해버렸기에 마땅한 이름을 붙여주기가 쉽지 않지만, 굳이 대분류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재즈와 블루스는 특유의 자유로운 잡종적 성격때문에 세계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은 재즈 아티스트는 세계 곳곳을 헤매고 다닌다. 새로운 리듬, 새로운 선율,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서. 블루스는 위치하는 땅에 따라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의 음악에서 블루스, 포크, 컨트리, 스키플 등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비틀스의 기타리스트)은 일찍부터 시타를 찾아 인도에 머무르기도 했다. 수동적으로 밀려온 외부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양식을 찾아 헤매고, 그것을 열심히 접목시켜보는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이 그들을 노래하게 했다.

물론 현재 이 땅에서도 몇몇 이들이 그러한 시도를 하고있다. 퓨전전통음악은 이미 80년대에 시도되었고, 서태지, 넥스트 등의 유명 대중가수 역시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1+1 형태의 접목일 뿐 완전히 섞인 색깔이 되지는 못한 상태다. 기타로 '궁상각치우'를 흉내내고, 태평소로 블루스를 연주하는 것이 아닌 더 나아간 시도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혀져 가는 모든 것을 보존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