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과학의 달을 지나며

이성우 운영위원(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위원장)

과학의 달 4월이 조용히 지나갔다. 천안함 침몰의 후폭풍에 밀리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가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덮였다. 제43회 과학의 날 행사는 그저 과학기술진흥 유공자들을 포상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란 이후 멜라민, 탈크, 광우병 등 중요한 국민적 관심사는 국민들이 스스로 익히고 대응하는데 익숙해진 것인지, 이번에도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둘러싸고 전문가 뺨치는 논객들이 인터넷 공간을 활보했다. 그러나 공인된(?) 전문가 또는 그들을 대표하는 정부의 말은 전혀 권위를 갖지 못했고 도리어 혼란을 부채질하고 불신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온 국토를 무참하게 파헤치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을 보라!

좀 과장스러울 수도 있지만, ‘참터’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전문적 식견을 갖춘 현장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을 연결하여, 이를테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과 문제점을 올바로 규명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난 6년간 우리가 경험했듯이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문제에 관해서도 전문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2008년 5월, 4대강 정비사업이 곧 대운하라고 양심선언을 했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가 결국에는 중징계를 당했던 것처럼, 과학기술자로서의 판단을 그대로 밝히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그 뒷감당의 책임까지 고스란히 져야 한다.

이제는 심지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대놓고 전문가들을 꾸짖는다. “(광우병에 관한)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국무회의에서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건 2년이 지난 일이니 그래도 약과이다. 천안함 침몰은 불과 2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얘기들이 버젓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경구가 공허하게 들릴 만큼 이 나라가 거꾸로 서 있다. 국가과학기술정책이 잘못되었노라고, 과학기술 전담부처가 필요하다고, 과학기술 행정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이러저러하게 판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일갈하는 것조차 속절없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서 과학의 날을 맞아 ‘참터’다운 논평이나 성명서를 내고자 했던 의욕도 슬그머니 꺾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있을 수는 없다. 우리 이웃에서 발생하는 과학기술의 문제를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파고들어 해결해 보자는 ‘참터’의 소박한 꿈과 그것을 지탱해 온 열정은 이러한 격동과 혼돈의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며,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언제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바로 지금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한자말을 빌어 얘기하자면, ‘참터’에 걸맞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를 갖추고 더디게 가더라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의욕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이 ‘참터’의 현실일지라도, ‘참터’의 일에 관한 자신과의 약속과 서로간의 믿음과 기대를 잃지 말고 차근차근 함께 가자는 말이다. 내년 과학의 달은 순전히 우리들의 힘만으로도 올해와는 달라질 수 있도록 신명을 다해 뛰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