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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의 도시락과 총각선생님 ^^*

작성자 : 오예원

Date : 2004-10-28 02:15 | Hit : 1,515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내가 여고2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학교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 교직에 부임해 오신 불어선생님이 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극히 평범한 분이 셨는데 그때 당시에는 왜 그렇게도 그선생님이 멋져보였는지....젊은 총각선생님에 멋진 외모 (그때 당시 아이들에 눈에...) 불어선생님은 얼마 되지 않아 전교의 모든 아이들의 관심이 대상이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교과서의 딱딱한 어휘대신 아름다운 샹송을 들려주셨고 프랑스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말씀해 주셨다.
더구나 전교의 모든 사춘기 소녀들의 심금을 울리던 선생님의 첫사랑 경험담까지......선생님은 그렇게 모든 소녀들의 연인이 되었다.

교무실에 가면 늘 불어선생님의 자리에는 아이들이 갖다놓은 꽃과 편지가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
그중에는 대학에 가면 선생님께 프로포즈를 하겠다는 아이들의 편지도 있었다고 한다 ^^ 선생님이 얼마나 웃으셨을까...

그런데 또 우리 수학2 선생님....40 이 다된 노처녀에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그 B사감을 꼭 닮았을것 같은 우리들의 시어머니였다.

어느날 내짝궁과 나는 시험도 끝났겠다 해방감에 기분이 좋다고 수학시간에 뒤에 앉아 냠냠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저 시어머니 그래도 시험끝난 첫날인데 우리를 또 괴롭히지는 않겠지....밥 한입물고 칠판 쳐다보고 반찬 한입물고 노트 필기 하는 척하고....그런데 밥한숫가락 퍼넣는 순간....슈웃...골인!!! ...이마에 날아와 정통으로 부딪히는 분필토막.....

야 너희 둘다 이리 나와!! 도시락들고 나와!!! 얼른....

아뿔사!! 그 시어머니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짝궁과 나는 도시락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너희 밖으로 나가서 도시락들고 무릎꿇고 있어!!!

B사감은 책으로 우리를 한대씩 내리치더니 씩씩거리며 나와 짝궁을 교실에서 내쫒았다.
나와 짝궁은 속으로....어휴 저 노처녀 히스테리....하면서 복도에 나와 도시락을 번쩍 치켜들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복도에서 무릎꿇고 있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누가 보는 사람없으니 그냥 몸으로 때우기만 하면 되었다.

수업이 끝나자 B사감은 그래도 분이 안풀렸는지 우리더러 따라오라는 것이 었다.
그랬더니 아뿔사!!!.......글쎄 교무실앞에서 도시락을 들고 무릎을 꿇으라는 것이었다.

아아 !!!! 이건 정말 고문이다.
쉬는 시간 수많은 선생님들이 오가시는 교무실 앞에서 도시락을 들고 벌을 서라니....
저 악독한 B사감!! 이러니까 시집을 못가지....

짝궁과 나는 교무실 앞에서 뚜껑열린 도시락을 번쩍 치켜들고 무릎을 꿇고 벌을 서야했다.
그때의 그 쪽팔림이란......ㅠ.ㅠ

수많은 선생님들이 오고 가며 우리를 쳐다보곤 웃고 가셨다.
뭘보세요? 선생님은 옛날에 수업시간에 도시락 먹어 본적 없나요? 원...참.....밥먹은 것도 죈가요?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글쎄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쪽에서 우리들의 연인 불어선생님이 이리로 오고 계신 것이었다.

아이고....쪽팔려 큰일 났네 어떻게 하지.......할수없다....에이
나는 그냥 고개를 푹숙이고 얼굴을 감추려 했다. ....그런데 숙여지는 고개와 함께...그렇게 도시락에서 밥이 교무실 복도 바닥으로 쏫아지고 말았다.
밥에 계란말이에 김치복음까지... 숫가락 포크 쨍그랑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

아....하나님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
태어나서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은 없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고개를 푹 숙이고 불어선생님의 발만 쳐다보던 나는 선생님이 교무실안으로 들어가자 정신을 가다듬고 얼른 밥을 주워 담았다.

머리속이 너무나 혼란 스러웠다.
쏟아진 도시락 앞에서 고개 푹숙이고 있을때 선생님이 틀림없이 나만 쳐다보셨겠지....아이구 이일을 어쩐담......

그날 이후로 나는 졸업할때까지 불어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선생님이 그때 쏟아진 도시락 앞의 그 소녀가 나라는 것을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나를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자상한 미소도 나에겐 고문이었고 이따금씩 선생님이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시키시면.....왜 나만 시키지? 선생님이 그일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만 시키시는 걸꺼야......선생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졸업하고 몇년 후에 학교에 찾아갔을때 나는 불어선생님께 그때의 일을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그일을 기억하시나요? 그때 그애가 저라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그때 쏟아진 밥 반찬 숟가락앞에서 코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를 보고 한달동안을 웃으셨다고.....
그뒤로도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다가도 나만보면 그때의 일이 생각나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고......

선생님께 그렇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해 드렸다면 그때의 나의 아픔과 상처(?)는 결코 무가치한 쪽팔림만은 아니었네.....
오늘은 여고시절의 그 불어선생님이 보고 싶다.

그리고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 있어도 가끔은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몰라도 아름답고 멋진 사람들과 그렇게 만난다는 것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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