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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예원
Date : 2004-12-02 19:50 | Hit :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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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주먹을 펴지 못하는 원숭이가 아닐까? ***
-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 혁명 (강수돌 지음, 그린비, 2003년)을 읽고
지난 17일에 끝난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나라 안이 온통 시끄럽다. 휴대폰 문자메시지 전송과 카메라폰 기능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한 방법 뿐만 아니라 대리시험 같은 고전적인 수법도 동원되었다고 한다.
시험과 관련된 부정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부정행위 때문에 말썽이 많았다.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수법도 아주 다양했다. 몰래 책을 가지고 들어가거나 종들을 시켜 답안지를 베껴오기도 했다. 혹은 시험답안지를 바꿔치거나 대술(代述)이라 하여 대리시험을 치기도 했다. 아니면 미리 출제자를 매수하여 시험 문제를 빼돌리거나 응시생이 답안지에 몰래 점을 찍거나 표시를 하여 채점할 때 점수를 높여 받는 방법(赫蹄)도 있었다. 권문세가의 경우에는 절과(竊科)라 하여 다른 합격자의 답안지에 이름을 바꾸어 붙여서 부정합격하는 악랄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부정행위는 최근까지도 토익(TOEIC)과 텝스(TEPS) 등 어학시험은 물론 대학 편입시험과 GRE(미국대학원 진학시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의 리포트에까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가짜 박사학위를 이용해 대학교수가 된 사람도 있고, 가짜 대학 졸업장과 자격증명서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한다.
우리사회에 시험 부정행위가 이처럼 만연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도덕불감증’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퍼져있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덕불감증’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과 교육당국은 새로운 교육정책을 내놓거나 교육개혁을 주창한다. 교원단체나 시민단체는 인성교육에 힘을 쏟아 사회적 가치관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왠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은 교육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한 책이다. 지은이는 전 국민이 교육전문가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때문이라고 한다. 첫째, 교육 문제를 교육 문제로만 풀고자 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좋은 제안이 나와도 먹고사는 문제와 결부해서 현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좋은 제안에 그칠 뿐이다. 그래서 교육 문제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교육과 더불어 경제, 나아가 삶의 방식과 더불어 풀어야 한다. 둘째, 교육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철저히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셋째, '나부터 바꾼다'는 자세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강수돌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강제하는 경쟁 시스템과 ‘돈벌이 패러다임’이 오늘날 교육 문제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본래 ‘경제’란 돈벌이-이윤추구-부자 되기가 아니라 건강한 살림살이 즉 건강하게 먹고사는 것(경세제민)이며, 돈벌이는 살림살이의 한 수단에 불과한데 지금 우리는 그 수단인 돈벌이를 위해 목적인 살림살이를 희생시키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효율적인 이윤 추구를 위해 사회의 각 구성원·사회·국가 간 경쟁을 부추기고,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할수록 ‘능력 있는’ 사람·사회·국가로 대접한다. 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돈벌이 기계가 되어 이윤추구에 매달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대접받으려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강제하는 경쟁 시스템과 ‘돈벌이 패러다임’에 빠져있다 보니 교육을 주관하는 부서에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자원’으로 보는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우리에게 세계화는 곧 '영어'와 '구조조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어는 이미 단지 언어가 아니라 개인 능력의 표상이자 최소한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영어배우기 열풍은 태교부터 시작하여 직장인의 새벽학원 등록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예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감행하는 '원정 출산'이나, 자녀의 조기 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이산가족의 고통을 참고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 현상의 배후에도 최소한 영어가 있다. 또한 IMF 구제금융의 경험이 자본에 더욱 힘찬 날개를 달아줌에 따라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은 날로 늘고 있고 명예퇴직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 직장인이 줄을 잇는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이라도 한 듯 지금의 학교는 쓸모 있는 노동력을 양산해내는 공장이 되었다. 교사는 그 공장에서 우수한 제품과 열등한 제품을 골라내는 노동자로 전락했고, 교장은 그 공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관리·감독하는 기업주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서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장하는 동안 눈치 보기를 반복 학습하여 경쟁을 통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하는 생존전략을 주입시키고 있다. 지금의 학교(school)는 애초부터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가정(home)을 기본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공장(factory)을 닮았고, 그 공장은 다시 군대(military)를 닮아 있다. 그것은 사랑과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수평 구조가 아니라 명령과 복종을 기본으로 하는 수직 구조이다. 입시위주의 학교 교육에서는 더 좋은 성적,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을 버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이 없어지지 않는 한, 더 좋은 성적과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돈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서 자신을 갈수록 억압해야 하고, 다른 이들의 정서와 감정, 의견과 주장에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다. 모든 경쟁 상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라이벌 의식-자기억압이 폭력이나 왕따-짜증 같은 공격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우리의 교육 문제는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경제시스템과 맞물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현실은 끈질기게 변하지 않는다. 교육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내면화한 '출세와 성공'의 패러다임과 개별 교육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견고한 바위와 같은 이러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강수돌 교수는 교육문제를 푸는 열쇠는 새로운 교육정책이나 교육개혁에 있지 않고 바로 나부터의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교육 문제는 ‘교육’이라는 한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와 관련된 총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나부터’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로만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치원 서당골에서 직접 귀틀집을 짓고 노모와 아내, 세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몸으로 이러한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있다.
강수돌 교수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식구들의 오줌통을 비우는 일이다. 집 밖에 뒷간을 따로 만들어서 똥이나 오줌을 이용해 거름을 만들어 가족들이 손수 일구는 텃밭에 뿌려준다. 중학교 3학년인 큰아이는 자전거로 통학하고, 초등학생인 둘째와 셋째는 아침에 등교할 때만 차로 태워준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자기들끼리 10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학원에는 보내지 않고 자기네들이 하고 싶어하는 무용이나 태권도만 가르친다. 그러자 아이들은 집 주변의 자연을 놀이터로 삼고 친구로 삼았다. 아이들은 벌레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흙 속의 지렁이를 보고도 놀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울을 떠나길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강수돌 교수의 아내 조경선 교사는 이렇게 충고한다. “시골 생활에 대해 미리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가상 경험이나 피상적 이해로는 생태적 시골 생활이 불가능하고 불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 생활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두려움과 불편함이 신기하게도 ‘깨지고 없어진다’. 직접 살아보는 체험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은 사라지고, 소록소록 피어오르는 행복감이 불편함을 더 이상 불편함으로 느끼지 못하게 한다.”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먹을 펴지 못하는 원숭이와 똑같다. 구멍 뚫린 고목나무 몸통 안의 먹을거리를 발견한 원숭이가 손을 집어넣고 그 먹이를 움켜쥔 원숭이는 주먹을 펴지 않으면 손을 빼내지 못한다. 일류주의와 강박증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주먹을 펴야만 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나부터의 작은 실천인 것이다. 작은 실천을 위해서는 큰 결단이 필요하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맞춰서 대안학교, 주말농장, 유기 농산물로 밥상 차리기 등과 같은 생태적 삶을 살고자 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이러한 결단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강수돌 교수가 던진 ‘나부터’ 작은 실천을 통해서 교육혁명을 이루자는 말은 수능 부정행위로 어수선한 이 가을에 나의 ‘화두’가 될 것 같다. 그 화두는 머리나 마음으로 깨달아서 입으로 ‘할!’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할 수 있는 작은 무엇인가를 실천함으로써 풀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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