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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조항현
Date : 2004-01-02 15:41 | Hit : 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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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청년환경센터 대전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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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초 대전의제21에서 주최하고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주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대전에서 오랫동안 '시민과학자'로 살아오신 대전대 환경공학과 김선태 교수님도 패널로 참석하셨다. 얘기를 하시면서 대학에 다닐 때 '사회열역학'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왔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그것에 대해 물어보았고 간단히 얘기를 나누었는데 한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을 1주일 정도 남겼을 때 연말인데도 학교에 남아 궁상을 떨며 오랫만에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책을 골라보았다. 그러다 '사회열역학'을 검색했고 똑같은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이것저것 다른 책들과 함께 주문했고 책이 도착한 것은 지난 월요일즈음. 주문한 책 중에서 제일 먼저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과연 어떠한 얘기들이 들어있을까. 요즘은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데 이 책의 저자인 최동식 교수는 이 연구를 계속 하고 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고려대 화학과 홈페이지에서 화학과의 역사를 소개한 부분에 이름이 한번 언급되었고 고려대 과학학협동과정 홈페이지에서 여러 강의를 하고 있으신 듯 하다. 그리고 이 책도 2002년에 출판되었으니 1978년 처음 사회열역학 심포지움이 열린지 2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그 흐름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모형과 이론의 개념, 사회현상에의 적용, 미래사회 및 과학이다. 1부는 사회현상을 열역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열역학의 상전이 그래프의 각 부분에 여러 사회형태를 대응시켜 설명하고 있으며 그게 책의 주요 주제이자 내용이다. 열역학의 상전이 그래프라는 것은 물질의 세 가지 상태, 즉 고체-액체-기체 상태를 넘나드는 전이를 그린 것이다. 물질의 상태는 온도와 압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로축을 온도, 세로축을 압력으로 한 2차원 그래프를 그리면 고체-기체 상전이가 일어나는 곡선과, 액체-기체 곡선, 고체-액체 곡선을 그릴 수 있고, 이 세 곡선이 만나는 점을 삼중점이라고 한다. 또한 액체-기체 곡선의 한끝이 삼중점이면 다른끝은 임계점이 되는데 그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것을 액체라고 불러야할지 기체라고 불러야할지 모호해지는 상태가 된다. 저자는 이 그래프를 몇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각각을 '전사회(pre-society)', '부족사회', '토착사회', '고압솥사회', '후사회(post-society)'로 나누고 각 상태들을 각 사회형태에 대응시키고 있다.
그리고 열역학의 기본 개념들인 온도, 압력, 부피, 엔트로피, 에너지, 깁스자유에너지, 엔탈피 등을 사회열역학에 적용시키면서 사회온도, 사회압력, 사회엔트로피 등의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어낸다. 사회를 열역학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물리를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이런 류의 농담을 즐겨 하곤 했는데 이 책은 그것들을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다루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엔트로피 증가법칙과 혼돈이론, 자기조직화와 같은 자연과학의 개념들이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쓰여왔고 이 사회열역학이라는 분야도 그 흐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 책의 시도와 성과를 일정정도 인정(내가 이런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_-)하면서도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해야겠다. 물질세계의 입자를 사회의 구성요소인 인간에 대응시키는 것이 사회열역학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겠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대응'시키겠다는 말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시키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우리는 입자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의 질량, 전하, 부피와 같은 양들을 정의하고 그 양들의 상관관계를 밝혀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그러한 입자에 대응시킨다고 할 때에 인간의 어떠한 요소를 입자의 어떠한 요소에 대응시킬 것인지,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들이 부족하다.
저자는 또 사회온도와 사회압력을 정의하는데, 자연과학의 온도라는 것은 입자들의 운동에너지의 평균값이고 압력이라는 것은 단위면적에 부딪히는 입자들의 모멘텀과 관련된 양이다. 그런데 사회온도와 사회압력은 온갖 사회현상들을 모아놓고 대충 얼버무린 후에 거기에 붙인 이름에 다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정확하고 명쾌한 정의가 없다는 말이다.
이렇다보니 열역학의 공식들을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도 정말 그것이 사회열역학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워지며 동시에 물질의 상태를 각 사회형태에 비유하는 것도 너무 거칠고 모호해지는 것이다. 2부 사회현상에의 적용도 1부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비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3부 미래사회 및 과학에서는 미래학과 초과학 등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신문기사를 통째로 퍼오는가 하면 내용도 잘 정리되지 않고 UFO와 E.T 얘기를 하면서 공중주택 등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 책에 대한 실망은 당혹감으로 변해버렸다.
'개벽 다이제스트'라는 증산도에서 나온 책의 앞부분에 그려진 미래사회의 삽화가 있다. 거기에는 우주정거장, 우주에서의 삶을 그려놓고 있는데 지금의 상황에서 그러한 공중주택, 우주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나 '개벽'의 저자는 생각해봤을까. 물론 그만큼 기술이 발달하고 그만한 에너지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볼만 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건 SF에 불과하지 않은지. 그리고 또다른 테크노피아의 모습은 아닌지.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새로운 지도자는 두려움 없이 시장경제의 확산을 수용해야 한다'(163쪽)라거나 '빈부격차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재정적 차이에서 나오는 문화격차도 다양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문화의 계층성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고 이것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이 되어 왔다'(165-166쪽)와 같은 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게 사회열역학적 결론이 된다는 말인가...
욕만 하다 끝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나는 게임이론, 연결망이론 등에 기반한 사회통계역학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저자도 책에서 게임이론, 네트워크이론을 언급하기는 하는데 이 낱말들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처음부터 거시적인 열역학으로 접근할게 아니라 미시적으로 들어가서 인간과 입자의 대응관계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환원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지만, 환원주의적 이념을 버릴 수는 있지만 환원주의라는 방법을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개인들과 이 개인들의 상호작용(물론 개인과 구조는 양방향 상호작용을 한다)을 모형화하고 이로부터 거시적인 양들을 유도해내는 사회통계역학.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사실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 이미 시작되었다.
내용이 어쨌건간에 사회열역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흥미로웠다. 연말연시를 이 책과 보냈는데 -_-;; 그런데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컸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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