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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조항현
Date : 2003-12-10 13:31 | Hit :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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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환경 2003년 9월호 원고
전염병 모형과 지속가능성
이제 물리학의 대상은 물리현상뿐만이 아니다. 물리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개발된 연구방법을 생물현상, 사회현상, 경제현상 등에 적용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입자들의 스핀(위, 아래 두 방향만 있다)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투표라는 정치적 선택(찬성, 반대)이나 시장에서의 경제적 선택(사거나 팔거나)에 적용시킬 수도 있다. 많은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분야인 통계물리학은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올해 초 사스(SARS)의 확산은 세계적인 문제였는데 이전부터 전염병의 확산과 예방에 관한 연구들이 수리 생물학 등에서 이루어졌다. 1999년부터는 점들과 그 점들을 잇는 선들로 이루어진 네트웍 위에서 전염병의 확산을 연구한 논문들이 물리학 논문집에도 실리고 있다. 네트웍을 구성하는 각각의 점들은 병에 걸린 이웃에 의해 전염될 수 있는 S 상태(susceptible), 병에 걸려서 이웃들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I 상태(infected), 병에서 회복되고 있으며 전염시키지도 전염되지도 않는 R 상태(refractory) 중의 하나의 상태를 갖는다. I 상태인 사람과 S 상태인 사람이 직접 만나는 경우에만 전염이 일어나며 전염이 일어나는 확률을 p(0과 1 사이의 값)라고 하자. 각 사람은 병에 걸린 이웃을 '직접' 만나는 경우 병에 걸리지만, 병에 걸린 이웃을 통신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는 경우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이를테면 병에 걸린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병에 걸렸음을 이메일로 알려주면 나는 예방주사를 맞거나 사람들과의 접촉에 주의함으로써 얼마간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병에 걸린 이웃에 의해 예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을 q(역시 0과 1 사이의 값)라고 하자. p와 q를 조절하면 여러 가지 현상을 볼 수 있다.
우선 예방을 하지 않는 경우(q=0)다. 전염의 확률 p가 아주 낮은 경우 병은 퍼지기도 전에 사라진다. 전염의 확률이 어느 정도 높은 경우(그림에서 A 부분)에는 전염병이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은 병에 걸렸다가 나았다가 걸리기를 반복한다. 즉, 병이 살아남는다. 전염의 확률이 아주 높은 경우(B 부분)에는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병에 걸린다. 그리고 한꺼번에 회복을 하여 한꺼번에 낫는다. 그래서 결국 병이 사라진다.
예방을 하는 경우(q>0)를 보자. 다른 부분은 다 똑같은데 전염의 확률이 아주 높은 경우에 특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원래 병이 사라져야 할 B 부분이 병이 살아남는 C 부분으로 바뀐다. 예방 효과가 없는 경우 한꺼번에 병에 걸리던 점들 중 일부가 예방에 의해 병에 걸리지 않고 남아 있다가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회복이 끝난 점들이 다시 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의 네트웍 위에 병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전염병이 보기에 사람은 숙주이며 병이 이용해먹는 자원이다. 이를 자연자원이라는 네트웍 위에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해석해보자. 그러면 전염의 확률 p는 인간이 자연자원을 소비하는 속도로 비추어 생각할 수 있고, 예방의 확률 q는 그러한 소비를 줄이거나 지연시키는 속도로 생각할 수 있다. p가 너무 높으면, 즉 사람들이 자원을 빠른 속도로 소비하면 자원이 회복되기 전에 더 이상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여 멸종(B 부분)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A나 C 부분에 있어야만 한다. A 부분은 예방할 필요 없이 적당한 소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며, C 부분은 소비 수준이 높아도 자연을 빠르게 회복시킴으로써 살아남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람의 지속가능성이다.
결과는 새로운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양식과 지혜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내용이겠지만 무한한 성장과 개발만을 믿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연구에 관한 논문은 거의 완성되었으며 마무리 단계에 있음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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