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과학상점인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설립됐다.

이 센터는 과학기술의 관련된 문제를 대학·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해결해 나감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생소한 개념인 과학상점에 대해 인하대학신문 1027호에서는 이에 대한 소개와 함께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 짚어 봤다.

지역 기반의 “참여연구"가 필요한 이유

미국 메사추세츠 주, 워번 시에서는 1969년부터 10년 사이에 12명의 아이들이 백혈병에 걸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 희생자의 어머니들과 마을 사람들은 소아백혈병의 원인에 대해서 조사했고 곧 인근 회사들에 의해 오염된 공동 우물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공동 우물과 소아백혈병 사이에 명백한 관계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주민들은 할 수 없이 JSI 센터(환경보건연구센터; John Snow, Inc.가 후원하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하버드의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하버드 팀은 주민들과 공동으로 연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민과 하버드 공동조사팀은 오랜 연구 끝에 오염된 물과 소아백혈병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통계적으로 밝혀냈고 이 결과는 이후 800만 달러의 보상금과 오염규제에 관한 연방정부법 제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과학상점이란?

과학상점이란 지역주민과 주민회, 시민단체나 여성단체,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과학기술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받아 지역의 연구기관이나 대학의 연구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역에 기반한 ‘참여행동연구센터' (Community Based Research Center)를 말합니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학술연구에 접근할 기회가 없는 활동가 집단들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을 “중개"하고 “연구"하는 JSI 센터와 같은 곳이지요.

과학상점의 역사와 현황

과학상점은 196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 대학교수들과 학생들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77년, 지금은 15명의 스텝과 3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암스텔담 과학상점이 최초로 정부인가를 받고 대학 내 공식기구로 제도화되게 됩니다. 1980년대에는 네덜란드에서의 활동에 자극받은 인근 유럽 국가에서도 과학상점이 고양되기 시작했고 이후 네덜란드,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유럽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의 미주 국가 그리고 이스라엘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까지 널리 전파되게 됩니다. 현재 과학상점은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구성하고 국제학회를 열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하였습니다.

과학상점이 2,30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지역에서는 그 경험이 일천한 한국사회와는 달리 단순한 ‘중개'나 ‘연구'의 수준을 넘어 좀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상호교류'를 고민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시작된 과학상점은 현재 경제/경영학과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 분야로까지 확대되었고, 과학기술정책의 결정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를 좀더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유용한 창구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과학상점운동

우리나라의 과학상점운동은 1998년 서울대학교의 이공계 대학원생과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과학상점운동 관악학생특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과학기술운동단체였던 “서울대 이공대신문사"가 학내 각 단체에 제안하여 연합체를 구성하고 선전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서울대학교 내에 공식적인 ‘과학상점 기구'를 설치하는 데 운동의 목표를 두고 ‘과학기술운동'과 ‘대학개혁운동'을 벌이는 것에 운동의 내용을 두면서 의욕있게 활동했으나 결국 우리나라에 과학상점을 소개하는 것으로 약 2년 후에 자신의 역할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1999년에는 전북대학교 이강민 교수가 주축이 되어 교내에 과학상점이 만들어 졌습니다. 전북대학교 과학상점은 국내 최초로 학교 당국의 공식기구로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4백 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70여 건의 크고 작은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다룸으로써 대학과 지역 사회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에는 비정부기구(NGO) 형태의 과학상점운동 단체인 ‘시민참여연구센터(약칭 참터)'가 3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7월 1일 창립하였습니다. 필자가 속해 있기도 한 참터는 대학 또는 대학의 구성원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여타의 국내외 과학상점과는 인력 구성에서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출연연구소 등이 밀집된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하여 교수, 학생뿐만 아니라 연구원들을 다수 포괄하고 있고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 환경단체 등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과학상점 활동의 중요한 ‘참여자'들이 분야별로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셈입니다.

한국사회 과학상점의 과제

과학상점의 의의는 과학기술자들이 사회와 소통하고 자신의 지식을 나눌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그들을 자극한다는 것과 지역사회의 과학기술 문제 해결의 역량을 강화시킨다는 것에 있습니다. 과학상점은 삶과 과학기술을 한자리에 가져와 서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실천적인 공간이며, 자본과 권력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배 매커니즘에 저항해서, 과학기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연대와 참여를 실천하는 작은 ‘진지'가 될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과학상점이 이러한 작은 ‘진지'가 되기 위해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를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하면서 끝맺을까 합니다.

첫째, 공공연구기관 내에서 ‘공익적 연구'에 대한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과학상점운동이 활성화되느냐 마느냐는 참여연구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에 일차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개별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높이고, 공공연구기관은 지역사회를 위한 연구활동에 대한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만 이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 할당된 업무' 이외의 활동에 대해 합당한 배려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한국사회 조직문화가 주는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고 연구자들의 참여를 좀더 손쉽게 이끌어 낼 것인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될 것입니다.

둘째, 지역주민조직이나 지역시민사회단체와의 성공적인 파트너쉽이 형성되어야만 합니다.

과학상점은 근본적으로 자신과 그 구성원들만으로는 활동을 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지역의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주민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직들 등과 함께 조사연구를 해야만 합니다. 즉 지역의 조직들은 과학상점의 의뢰자인 동시에 과학상점활동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상점은 ‘조사연구를 통한 지원'이라는 자기 역할에 맞게 활동해야만 합니다. ‘지원'을 벗어나는 과도한 활동을 하게 되면, 과학상점 자체의 의의를 상실하고 여타 시민사회단체 중의 하나로 위치지어질 수 있습니다. 지역주민조직이나 지역시민사회단체와의 성공적인 파트너쉽이란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지방정부 또는 중앙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재정지원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과학상점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정부부처에서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일들입니다. 연구를 의뢰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의뢰를 받고, 과학기술이 야기한 사회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 등에서 ‘공적 부조'의 성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등으로부터 이 점을 잘 설득시키고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확보해야만 대학과 연구소 등의 공공연구기관 내에 과학상점을 제도화시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