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JSI센터’가 있었다면…
그렇다면 지역주민은 과학기술의 소외자가 될 수밖에 없을까.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본부를 둔 ‘환경·보건 연구를 위한 JSI센터’(이하
JSI센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콜레라 발병의 원인을 알아내 ‘유행성 질병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스노우의 이름을 따온 JSI센터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환경문제를 조사하려는 주민들에게 기술적인 지원을 하는 비영리 단체다. JSI센터의 직원은 매우 단출하다. 모두
다섯명으로, 3명은 지역주민과 연락을 주고받고 2명은 기술적 자문을 하거나 현안에 관련된 과학기술자를 묶어낸다. 핵심적 활동은 지역주민과
과학기술자, 정부 관료 등이 서로 존중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주민들이 제안한 프로젝트에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해 조사
내용의 공신력을 높여준다.
JSI센터는 미국 매사추세츠 워번시에서 발생한 백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잉태됐다. 워번시의 한 마을에서는 10년에 평균 5.3명이
백혈병에 걸렸다. 희생자들 부모를 중심으로 ‘페이스’(FACE·For A Cleaner Environment)라는 모임을 결성해 자체적으로 실태
조사에 나섰다. 당시 주민들은 비트리스 식품과 그레이스 회사가 배출하는 물질이 공동우물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추측했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미국
국립보건원과 질병통제예방센터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주민들의 요구를 여지없이 묵살했다. 이에 하버드대학 공중보건연구소에 역학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JSI센터를 만들어 오염된 우물을 식수로 사용한 게 백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기업으로부터 800만달러의 보상금을
받게 됐고, 화학물질 처리에 관한 연방정부법 제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만일 우리에게도 JSI센터 같은 기관이 있었다면 도림천 복개가 멋대로 추진되거나 온산병이 묻혀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란에 사건을 축소하려는 정부와 지자체, 주민들의 요구에 무관심한 연구자, 행복 추구권과 생존을 위협받는 주민들이
있다는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서는 과학기술자가 없었을 뿐이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임익성
정책국장은 과학기술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근본적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며 이렇게 말한다. “과학기술 정책에서 시민의 몫을 찾아줘야 한다.
왜곡된 과학기술을 바로잡으려면 연구자들의 실험실과 지역을 잇는 가교 노릇을 해야 한다. 정부도 단기적 성과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연구자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 전문가의 지원이 절실한 사안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누구나 동네 구멍가게처럼 쉽게 드나들며 연구를
의뢰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요구에 따라 대전 지역의 젊은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뜻을 모았다. 국내 과학기술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대덕단지를 중심으로 ‘시민참여연구센터’(www.scienceshop.or.kr)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연구자들은 2년 전부터 대전
지역 과학상점을 준비하다가 시민참여연구센터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민참여연구센터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과학을 지향한다. 사람과 자연, 공동체보다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는데 익숙한 과학기술에 인간의 얼굴을 입히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자들은 연구 결과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도 있다.
지역 정부출연연구소의 도움 절실
△ 주민과 함께하는
과학기술을 추구하는 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 신명호씨. 우주 발사체 제어를 연구하는 신씨가 모형 액체과학로켓 앞에 서 있다.(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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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 신명호씨(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발사체체계실 선임연구원)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화동 일대의 ‘대전
1·2공단’을 제2의 일터로 삼았다. 미량금속원소와 유독가스에 의한 악취는 심한 두통과 메스꺼움을 일으킨다. 지하수로는 세탁할 수 없을 정도로
토양오염도 심각한 상태이다. 이런 심각한 환경에서 공학박사(전기·전자 전공)인 그가 대화동 일대의 ‘오염 해결사’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969년 공단이 조성된 뒤 단 한번의 환경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지역에서 하루 종일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시달리는 이유를 밝혀내는 데
도우미가 되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 주민들의 악취 원인 규명을 위한 역학 조사 요구에도 대전시는 악취의 농도를 측정하거나 원인 사업장을 점검하는
데 그쳤다.
오랫동안 대화동에 거주한 주민들은 악취에 만성이 됐다. 처음으로 동네를 찾은 사람이라면 손이 저절로 코로 갈 정도인데도 대화동
주민대책위에서 활동하는 주부 이성희씨는 “낮에 느끼는 정도는 악취도 아니다. 악취 원인물질이 가라앉은 한밤중에는 숨을 쉬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했지만 제도권 내에서 피해조사를 진행하고 친환경 공단으로 바꾸기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시민참여연구센터를 비롯한
대전환경연합·인의협 등의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1·2공단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범시민대책위’를 꾸렸다. 여기에 참여한 신씨는 과학기술자들이
지역주민들을 만나고 연구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건설·환경공학과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의 연구자들이 현장 조사를 하고
기술자료를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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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대화동 일대
주민들은 대전 1 · 2 공단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로 인해 온종일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시민참여과학센터는 이 지역의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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