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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신명호
Date : 2005-03-18 16:03 | Hit :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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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벌써 봄 날씨겠네요.
여기네 사람들은 봄맞이 한다고 행사를 지난 일요일에 시내에서 한 것 같던데
아직도 날씨는 영하입니다. 지금은 모자 안쓰고 다녀도 될만한 정도의 날씨입니다.
춥기는 해도 봄 기운이 느껴집니다. 여기 낮 시간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 춘분 때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져야 되니까 3월 말쯤에 한국하고도 낮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지점이 생기겠군요. 이제 생활은 완전히 안정화되어서 매일 같은
일들의 반복입니다. 시스템 설계 문서 작성하는 것 때문에 계속 끙끙대고 있습니다.
러시아 엔지니어들과의 협력은 예상했던 것처럼 쉽게 진행되지가 않네요.
예전에 미국애들이 우주발사체 사업 관련해서 러시아 애들과 협력할 때 엄청
애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그 말을 이번에 완전히 실감을 하고 있습니다.
얘네들의 독특한 업무 스타일과 어떤 관성 같은 것들이 일처리를 아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겸사 겸사 혼자서 러시아인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분석들을
해보았습니다.
혹시 아실 지 모르겠지만, 볼셰비키가 국가권력을 쟁취하고 난 후 여러 난점에 부딪혔을
때 이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조직운영의 모토 혹은 패턴이란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일하면서 확실하게 느꼈던 것은 이네들이 어떤 부분은 엄청 꼼꼼하게 일처리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처리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거의 건드리지 조차도 않는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관료주의 이야기할 때 언급하는 '복지부동'하고는 상당히 다른면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곰곰히 분석을 해보았는데, 윗사람이 시키는 일은 아주 철저하게
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자기 이익이 명확한 부분 말고는 자기 맘대로 입니다.
이는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해오면서 1930년대 이후부터 볼세비키가 조직운영의 모토로
삼았던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기관에서는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집행하다 보니, 개개인들이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action을
취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책임자가 시키는 일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위에서 시키는 것만 확실하게 한다는 수동적인
업무 패턴이 관성화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아직 러시아의 조직운영 방식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데, 그 사회가 형성한 '역사적/사회적 지층'이란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러시아 사람들과 만나거나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얘네들은 '자발성'과 '주체성'하고는
아주 거리가 멀다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많은 러시아인들과 만나서 일을 하거나 대화한
경험이 적어서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얘네들의 행동 패턴이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국가사회주의에서 만들어낸 '사회주의적 인간형'이라는게 대부분의 사람들을
희망이나 꿈까지 주입되어 버린 기계적 인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아무리 대의나 목표가 훌륭하더라도 비자발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사회주의는 비판성과 생명력이 사라진 사회주의가 될 수 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확립이 각 개인이
'자발성'과 '주체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보장책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극단까지 몰고가야만 비판과 생명이 흘러넘치는 사회주의가
구축되는 거지, 민주주의를 건너뛰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다시 몸으로
확인한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배운 것은 사회주의적 주체가 형성되는 것은 반드시
비판과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이 그 목표를 몸으로 체화해내어야 하는 거지,
집단이나 단체가 제시하는 목표를 기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을 통해서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육과 실천 과정으로서의 주체 형성 문제를 철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너무 딱딱한 주제로만 흘러가버렸군요.
여하튼 러시아 사람들에게 이런 특성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순박하고 인간적인 편입니다. 여기서는 1000루블을 경계로 생활수준이 갈린다고
합니다. 1000루블이면 우리나라 돈으로는 4만원 정도입니다. 러시아에는 신흥 부자들이나
중산층들도 많이 형성되었지만 대부분은 아직 그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
같습니다. 1000루블이면 정말 먹고사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는 그렇지 않구요,
아마 중소도시 이하 시골로 가면 다들 그렇게 사나 봅니다. 모스크바에 산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입니다. 여기는 거주지 증이 있어서 우리처럼 아무렇게나 원하는 데 가서
'여기 살겠소'하고 등록할 수 없습니다.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거주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도
모스크바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군요. 우리나라로 치면 외국인 노동자처럼
모스크바에서 적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거죠. 그리고 여기는 월급을 몇 달치를
몰아서 주는 경우가 많답니다. 떼이는 경우도 많겠죠. 모스크바 시내와 외곽에는 우리나라
대도시에서와 같은 큰 백화점들과 쇼핑몰들이 제법 있습니다. 항상 사람들로 꽉 찹니다.
중산층들도 형성되고 있는데 빈곤층하고 격차가 꽤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의 국제연대가 제대로 잘 이루어져 있다면 저도 그 덕으로 모스크바에 있는
과기노조와 국제연대가 되는 노동조합 방문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듣고 할 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이처럼 이네들의 생활은 아직 팍팍하기만 합니다.
푸틴이 경제를 잘 챙기는 것 같지만 석유값이 올라서 그런거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입니다.
그렇게 많은 자원과 뛰어난 인력 풀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러시아의 지식인들이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희망'이 사라진 러시아에 새로운 전망과 활력을 불어 넣어줄 그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궁금해지는 군요, 누가 이 거대한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갈
것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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